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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매주 화요일마다 오던 그 손님 — 단골이 사라지는 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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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백년의 고독》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총살형 집행대 앞에 서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가 자기를 데리고 얼음을 구경 시켜 주던 그 아득한 오후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왜 총살 직전에 얼음 구경 기억이 떠오를까. 인간이 마지막에 붙잡는 게 왜 그 작은 장면일까.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단골 손님이 어느 날 갑자기 안 오게 될 때, 마지막에 떠오르는 건 뭘까.


내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 매주 화요일 오전 열 시에 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고 했다.

아메리카노 하나. 설탕 빼고. 창가 자리.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앉는 분이었다. 뭘 하시는지도 몰랐다. 노트에 뭔가를 쓰시다가 한 시간쯤 지나면 조용히 일어나셨다.

그런데 어느 화요일부터 안 오셨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다. 두 번째 화요일. 세 번째 화요일. 한 달이 지났다.

친구는 말했다. "마지막에 올 때 더 잘해드릴 걸.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상하게 코끝이 찡했다.

우리는 대부분 마지막인 줄 모르고 마지막을 맞이한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손을 잡은 날. 마지막으로 그 친구와 밥을 먹은 날. 마지막으로 그 가게 커피를 마신 날.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좀 다르게 했을 텐데, 라고 나중에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마지막인 척"을 연습한다.

오늘 이 손님이 마지막으로 오는 날이라면, 어떻게 대할까.

오늘 이 메뉴를 마지막으로 만드는 날이라면, 어떻게 만들까.

오늘 이 가게의 마지막 날이라면, 뭘 기억하고 싶을까.


거창한 철학이 아니다.

그냥 오늘, 앞에 있는 사람한테 조금 더 눈을 맞추는 것.

그게 전부다.

할아버지가 노트에 뭘 쓰셨는지, 내 친구는 끝내 모른다. 하지만 그분이 매주 화요일 창가에 앉아 있던 그 시간만큼은, 분명히 좋아하셨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걸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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