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말했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처음엔 이 말이 좀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그 말이 사실은 위로였다는 걸. 쓰레기여도 괜찮다고, 일단 써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이 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정리를 하고, 형광등을 하나씩 끄다 보면 조용해진다. 낮에 그렇게 시끄럽던 공간이 갑자기 텅 빈 것처럼 고요해진다.
그 순간을 좋아하는 사장님이 있고, 무서워하는 사장님이 있다.
좋아하는 분들은 말한다.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야." 무서워하는 분들은 말한다. "이렇게 끝나도 되는 건가."
둘 다 맞다. 그 감정이 동시에 온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나는 한때 편의점을 운영하는 친구 가게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새벽 두 시였다. 친구는 유통기한 확인을 하면서 말했다.
"야, 나 요즘 이상한 게 있어."
"뭔데?"
"손님이 없을 때가 힘든 게 아니라, 손님이 있다가 갑자기 없어지는 게 더 허전해."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있다가 없어지는 것. 가득하다가 비어지는 것. 우리가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은 대부분 "없음" 자체가 아니라 "있었다가 없어짐"일 때가 많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 에서 이렇게 썼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재해 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게 불을 끄는 그 순간에 다시 떠올랐다.
하루의 끝. 오늘이라는 시간의 마감.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매일 밤 하루를 한 번 죽이고 자는 거 아닐까.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시작하는 거고.
그래서 가게 불을 끄는 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몇 초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내일의 나를 조금 다르게 만든다.
"오늘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 하고 꺼도 되고.
"그래도 오늘 저 할머니 두 번이나 웃으셨는데." 하고 꺼도 된다.
같은 하루인데, 어떤 장면을 마지막으로 고르느냐가 다르다.
가게 불을 끄는 그 순간.
잠깐만, 1초만, 오늘 딱 하나만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손님의 표정이어도 되고. 잘 됐던 메뉴여도 되고. 아니면 그냥 오늘 날씨가 좋았다는 것도 괜찮다.
헤밍웨이 말대로, 처음엔 쓰레기 같은 하루여도 괜찮다. 일단 끝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일의 초고는 조금 더 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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